﹝Roman Jigokuzanbato  ‧  로만 지고쿠잔바토﹞

지금까지 5년간,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 는⋯⋯..

• 일주일만에 아와유키 마을을 떠나 모습을 감췄다. 홋카이도를 아예 떠났기 때문에 연락은 일절 불가했다.

• 다만 마을을 떠난 것은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 온전히 숨기지 못한 몸으로 인해 수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가미카와 현 경찰에 의해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반 사이보그 신체가 드러났고,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던 와중 자신을 묶어두던 유치장의 철창을 박살낸 뒤 자신을 추격하는 경찰 5명을 따돌린 탓. 이 때문에 당장 아와유키 마을로 돌아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 “야. 누구한테, 어디서, 어떻게 명령받고 여기까지 온 건지 말해.” “내 자의라니까… 몇 번을 말해야 들어주나?” “네가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일본에서 너같은 괴물 새끼 만들기는 불가능해. 알아? 그러니까 엿되기 전에 불어. 여긴 왜 왔고 뒤에 누구 있냐고.” … “경위님.” “왜.” “저 괴물딱지한테 이름 물어봤는데 자기 이름이 지옥참마도라는데요?” “... 허이구, 썅 그럼 나는 천황이다.”

• 도주 과정에서 다수의 범죄 및 불법 행위, 무력을 통한 협박을 일삼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렇게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도착한 곳이 도쿄라는 것. 외진 곳이 아닌 일본의 수도까지 걷고 걸어 발 디딘 이유는 하나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

• 문제는 어찌저찌 도쿄에 입성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생활자금이 쥐뿔도 없었다는 점이다. 건실하게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해도 몸뚱이가 몸뚱이인지라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했고, 무엇보다 지고쿠잔바토는 그렇게 ‘평범히’ 살아갈 바엔 제 혀를 깨물고 죽을 위인이었으므로 불가능했다. 따라 발 들인 곳이 도쿄의 뒷골목. 

• 대요괴 라이진을 상대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방울의 선택을 받은 자. 제 스스로 사지를 자르고 검으로 명명되길 택한 생체병기. 저 밝은 세상에선 괴물이라 불릴지 몰라도, 암흑가에선 달랐다. 무법지대만큼 첨예한 칼날이 빛을 발할 곳은 없지 않은가. 그것이 한 때 영웅을 바라던 이에게는 지독한 모욕일지 몰라도.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에서 검이 제 쓸모를 찾을 곳이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낭자.” “네, 네? 낭자요? 무슨 일이신지…” “응. 여기가 다케나카카이 쪽 사업…” “야. 이 새끼 뭐야?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쳐기어들어왔어? 고베 쪽 멍청이 새끼야?” “고베가 뭐지?” “? 뭐라고?” “낭자,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난 혼자야. 그리고 입단을 원해서─” “아니 누가 당당히 우리 사업장에 기어들어와서 입단하고 싶다고 해? 새끼가, 거짓말도 작작 쳐야지.” “음~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나?” “뭐?” “역시 말로는 안 통하나 싶어서 말이야, 낭자. 조금 아파도 참아주겠어?”

• 시작이 요란했던 것치고,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의 불법 지정폭력단 생활은 순조로웠다. 자금과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우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에서 쓸모를 찾고자 발 들인 조직이었으나 생각보다 더 그에게 잘 맞았으니. 

• 하지만 천하를 재패하길 원한 이가 어디 그림자에 처박혀 지갑이나 불리는 삶에 만족하겠는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잃고 검이 되길 택한 이상 뱀처럼 마음 속에 똬리를 튼 갈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인간이길 포기하며 열망한 것이 바로 이 세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야욕이었는데!

• 따라, 그라운드에서 4년의 세월을 보냈을 쯔음,  다케나카카이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은 그는 돌연 다케나카카이 도쿄 지부 간부 몇을 골라잡아 살해한다. 생활 자금도 쌓였고, 언제까지고 이 생활에 만족할 생각 없는 데다 4년을 부대꼈다고 한들 이들은 이름나지도 못할 악에 불과하다는 것이 살인의 명분이었다. “휴!”

• 허나 전설은 오래 전 설화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가 자신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이름 없는 악을 척결할 때를 제외하면 가히 전무했다. 암흑가 생활을 청산하고 멀쩡한 집을 구해도, 오토바이 한 대를 사도, 언더그라운드에선 먹지 못한 별미를 입에 넣어도, 삶은 여전히 지루했다.

• 따라 그는 다시금 제 발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영원히 채워지지 못할 허기를 원동력으로 삼아 1년이라는 세월동안 갖가지 폭력 조직을 종횡무진 누비며 때론 간부, 때론 일반 단원 따위의 목을 베면서.

• 그러므로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는 쿠로쿠모 언더그라운드를 갈망한다. 더 정확히는, 저 땅 속 세계의 불안정함을 갈구한다. 땅 도처에 드리웠던 절망의 향을 그린다. 이곳은 너무나 넓고 광활하나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검에겐 지독히도 평화로웠던 탓에.

• 도쿄에 거주한다. 집을 자주 옮겼고, 무엇보다 소속을 빠르게 갈아치웠다보니 정확한 주소를 이야기할 순 없다.

• 클래스메이트와의 연락은 그라운드에 발 디딘 지 일주일만에 모조리 끊겼다. 가미카와 현을 떠났으니 쿠폰을 통한 소통조차 불가능해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

• • • 地獄ざんばとう.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좋아한다. 그라운드에서의 생활에서도 숨기지 않았다.

    • 영웅, 기억되는 것, 꿈과 희망, 재앙, 선과 악, 매우 도수 높은 쇼츄를 사랑하고 망각을 증오한다. 여전히 낭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나 평어체를 쓴다. 청각은 여전히 좋지 않고, 신체에 딱 맞게 조정한 지 오래인 의수는 현 시점에 다다라 조금씩 삐걱이기 시작했다.

    • 파쿠르와 체술 및 검술에 있어서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 불법 조직원으로 지낸 세월 탓에 지고쿠잔바토라는 검은 닳지 않고 더욱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 고통을 감각하거나 흥분 상태에 돌입하면 칼날을 빼드는 습관이 생겼다. 그 외, 청소를 잘한다. 시체 은닉이 특기.

    • 왼쪽 늑골 아래 옆구리가 치명적인 약점이다. 힘을 줘 누르면 상당한 고통을 느낀다.

• • • 그라운드에 발 디딘 뒤 일주일 후 실종되었으므로 교우관계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애초 가미카와 경찰서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도망치는 신세였던지라 동기들과 연락하는 것은 위치가 특정될 수 있으니 불가했고, 다케나카카이의 일원이 된 후에는 쿠폰을 사용할 수 없었던 데다 전설이 되지 못한 제 스스로를 내보이고 싶지 않아했기에 반쯤은 자의로「츠바키」와의 모든 연을 끊은 셈이다.

    •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는 자신이 5년 동안 걸어온 삶에서 아쉬운 점을 꼽아보라면 바로 옛 츠바키를 거론한다. 부끄럽게도 못 지킨 약속이 꽤 있거든…

    •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가 저지른 ‘척결’은 놀랍게도 세간에 쥐뿔도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 저 뒷골목에서 지긋지긋한 야쿠자끼리 한 판 벌이는 것이 하루이틀 일이던가? 민간인이 휩쓸릴만큼의 스케일조차 되지 못했기에 그의 연이은 학살극은 손쉽게 6피트 아래로 묻혔다. 

    • 가족을 포함한 분파 구성원의 행적이나 생사는 모른다. 애초 관심도 없다.

    •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란 어찌나 지루한지. 충족되지 않는 갈증을 손에 피를 묻힘으로써 사막에 떨어지는 물 한 모금처럼 감질나게 채우고 있던 로만 하가네 지고쿠잔바토에게 있어 2주 전부터 시작된 방울의 진동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벚꽃이 떨어지던 날 울려퍼지던 라이진의 북소리처럼, 손 안에서 경련하듯 진동하는 방울은 오랫동안 굶주려있던 지고쿠잔바토의 열망을 일깨웠다. 

    • 전설이 되어 기억되고 말겠다는 소원을.

    • 지고쿠잔바토는 방울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짐을 싸고, 추위에 대비할 겉옷을 몇 가지 챙기고, 집은 팔아치운 채 아와유키 마을로 돌아왔다. 마치 처음으로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달빛을 마주했을 때처럼, 환희에 젖은 낯으로. 혹시 모르니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패딩 모자를 꾹 눌러 썼긴 하지만 말이다. 

    • 늦장 부리지 않았음에도 아와유키에 도착했을 때는 방울이 울리기 시작한 지 약 13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