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 Raku  ‧  로만 라쿠﹞

지금까지 5년간, 《로만 테츠 라쿠》 는⋯⋯..

• 그라운드 1년

  • 탈출 직후 잠시 아와유키 마을에 머문다. 약 5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방울이 회복될 낌새가 보이지 않고, 넓은 세상에 대해 알게 되자 그라운드를 좀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가미카와에 머물던 친구들이 있다면 다른 도시를 다녀오겠다 말했다.

• 그라운드 2년

  •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1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며 심경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라운드에 대한 원망과 질투심이 깊어진다. 

  • 별개로 여행을 하며 그라운드의 지식을 열심히 흡수했다. 책도 빠짐없이 읽었고, 도서관의 개장부터 폐장시간까지 있는 건 다반사였다. 필요한 돈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고장 수리를 원하는 글, 전단지 따위를 보고 찾아가 보수를 받았다.

  • 뒤늦은 성장통이 찾아와 키가 쑥쑥 커버렸다. 맞지 않게 된 옷 탓에 저렴하게 묶음으로 파는 옷을 사서 입고 다닌다. 미감이라곤 없다.

  • 위조 신분증을 만들었다. 라쿠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스다 라쿠’ 라는 이름으로 생활하고 있다.

  • 짧은 방랑을 끝내고 가미카와로 2년차 가을에 돌아온다. 그리고 여행하며 벌었던 돈으로 월세방을 하나 구했다. 최근 누군가 죽었던 집이라 집값이 저렴했다.

  • 만 18세가 되고 담배를 접하자 줄곧 피운다. 정신적인 도피처인 탓에 골초다. 

• 그라운드 3년

  •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면 부정적인 감정이 화수분처럼 불어나서 외면을 택했다. 삶은 유지해야 했기에 그라운드에서 쓸 휴대폰과 컴퓨터를 중고로 사 온라인 상으로 홋카이도 지방에 한해 수리가 필요한 것들을 택배로 받아 고친 후 보내주거나, 아주 가끔은 직접 출장을 가기도 한다.

  • 면허는 당연하게 취득하지 못하기에 출장을 갈 때면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에어보드 타던 것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였다. 역시나 중고로 구매했다.

• 그라운드4년

  • 여전하게 지낸다. 가미카와에서 연락이 닿는 친구들이 있으면 꼬박꼬박 연락하고 근황을 묻는다. 방울이 언제 힘을 찾을지에 대해서도 얘기했을 것이다. 기다린다, 문을 다시 열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외부와의 교류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웃집에서 누군가 찾아와도 무심했고, 일 외의 것엔 큰 반응도 없다. 그라운드에 무언가 남기고 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 그라운드 5년, 현재.

  • 방울이 울리자 지체 없이 아와유키 마을로 향했다. 가미카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당일 도착하여 가장 먼저 간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이 전부 모이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羅曼 鉄 蕾空  ―  4월 26일생, 황소자리, RH+O형, 노력하는…, 테츠 파의 마지막 후계자　

⁘ 오레(俺), 이따금 보쿠(僕) | 요비스테, 키미(君) | 어른에게 존대, 또래에게 반말 | 갈라지는 중저음 | 차가운 담배향 ⁘

• 탈출 직후 약 5개월간 아와유키 마을에 머문다. 상처를 치료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몸살에 걸렸다. 아픈 상태로 쓰러진 라쿠를 발견하고 돌봐준 사람은 한 노부부로, 둔감한 사람들인지 라쿠를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라쿠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알고 한동안 머무르게 해주었다. 라쿠는 은혜에 보답하고자 집안일을 돕고, 수리가 필요한 가구나 노후한 전자제품을 몽땅 고쳐놨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떠날 무렵에는 약간의 금전을 요구했다. 노부부는 흔쾌히 적당한 돈을 들려주었다. 손자가 집에 머무는 것 같았다며 좋았다며 기뻐했다. 라쿠는 그말에 더욱 우울감에 잠겼지만…….

  • • 라쿠는 당시 가미카와초에 머물던 친구들에게 ‘1년 정도 다른 곳을 돌아보고 오겠다’ 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시작했다. 짧게나마 둘러본 그라운드는 충격으로 가득했다. 햇빛, 바람, 눈, 비, 구름, 바다다 등…… 수많은 자연물도 놀라웠으나 그보다도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다. 거리는 웃음으로 가득하고 요괴에 대한 위협이 전혀 없는 세상은, 말 그대로…… 신세계와 가까웠다.

    • 그라운드의 햇빛은 너무나도 밝아서 커다랗던 동공은 좁혀지고, 의안이 빛에 적응하지 못해 두통을 일으킨다. 이 탓에 늘 안대를 착용하고 다닌다. 그리고 테츠의 신념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이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야 한다.’ 정말이지, 그라운드는 그런 곳이다. 어머니가 평생을 원하던 삶이 이곳에 있다. 그런 이곳에, 나 혼자……

    • 하지만 그런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기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내 고향은 이런 평화와 아름다움을 누릴 수 없는지에 대한 원망과 질투심이 자리한다. 요괴에 대한 위협이 없으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어째서 쿠로쿠모는 이것을 누릴 수 없는지…… 뭐가 그렇게 행복해서 웃어. 내 고향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아? 당신들은 우리 덕분에…… 

• 1년 후 다시 가미카와로 돌아올 무렵, 뒤늦은 성장통이 끝나고 라쿠는 몰라보게 컸다. 더불어 성격이 예민해졌다. 1년의 여행은 많은 것을 안겨주었고, 그만큼 많은 것을 박탈시켰다. 자신이 살던 세상이 얼마나 좁은 곳이었는지 깨달으며 허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존재하는 거지? 그런 생각을 끝없이 하던 중,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 • 꿈의 내용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고향이자 집이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손이 피로 물들어도 무언가 파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고, 찾고, 또 찾지만……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쿠는 그라운드로 올라오기 전, 사랑하는 가족을 애타게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앞집의 치토세 씨가 한 말이 아른거리고, 부정하던 것이 은연중에 떠오른다. 오른쪽 눈이 욱신거린다. 부모님이 자신들을 찾아달라고만 하는 것 같다. 

    • 악몽이 계속되자 도저히 맨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병원 치료 같은 건 고려해 보지도 않았다. 애초에 ‘병원’이라는 장소 자체가 익숙지 않은 탓이다. 당장에라도 고향에 돌아가 문을 열고, 가족을 찾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 찬다. 동시에 한켠으로 이미 돌아가셨을 거라 단정한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돌아가면 자연히 알 사실이다. 현재는 실종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 참상에서, 혹은 아야나시가 부재한 고향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며 피폐해진다. 그런 중 찾은 것이 담배다. 처음 니코틴을 접한 뇌는 머리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니코틴 중독과 가까운 상태라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안정을 찾기 어렵다.

    • 술도 종종 마시곤 하지만 주량이 약한지 맥주 한두캔 정도로 끝이다. 그라운드에서 사는 집 안은 기숙사와 마찬가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질러져있다. 매트리스 하나, 책상과 컴퓨터, 기술과 관련된 책, 택배 상자, 산더미 처럼 쌓인 담배꽁초 등……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의 방이다. 커튼도 죄다 쳐놓은 탓에 그라운드임에도 빛이라곤 없다. 집에서는 안대를 벗어두고 생활한다.

• 전반적인 생활은 검소하다. 애초에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만큼의 경제적인 여유도 없다. 직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 수입이 변동적이나, 그래도 능력은 있어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 돈 없이 사는 것에는 이골이 나서 돈관리는 잘 하고 있다. 고정지출(월세, 수도세, 식비, 담배값 등…)을 제외하고는 가끔 필요한 공구나 부품의 값, 간식 값, 게임 값 정도만 나간다. 하지만 가끔은, 가마카와에 사는 친구들에게 가 밥 한끼 달라고 구걸할지도 모르겠다.

  • •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최대한 대여하고 아슬아슬하게 돌려주길 반복한다. 업무를 위해 그라운드용 휴대폰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일 외에 그라운드 사람과 연락하는 일은 일절 없다. 바깥에 나갈 때는 후드와 모자를 깊게 쓰고 나가며, 외부와의 교류를 극단적으로 꺼린다. 누가 말을 걸어도 무시한다.

    • 그라운드에서 돈벌이로 쓰는 만큼, 기계에 관한 애정과 지식은 건재하다. 오히려 언더그라운드에 없던 그라운드의 기술들을 흡수하여 실력이 더 좋아졌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새 발명품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옛 기억에 의거해 남는 부품으로 조그마한 장난감 인형을 가끔 만들고는 한다. 별개로 집의 잠금장치는 철통보안이다. 도둑을 염려했다기 보다는… 세상에 이질적인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이고 강박적인 기제에 의한 것이다. 요컨대, 불안하다.

    • 먹는 양이 좀 줄었다. 단순하게 돈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성장기가 지나서 자연스레 줄은 것도 있다. 많은 것을 외면하면서도 그라운드의 음식은 좋아한다. 특히 달콤한 디저트류는 여유가 있으면 꼬박꼬박 사먹는다. 집 근처 편의점만 가도 쿠로바코에서 먹던 수준의 음식을 저렴하게 얻을 수 있으니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또 침잠된다……

    • 운동은 집안에서 틈틈이 하고 있다. 언제 돌아가서 다시 요괴와 싸워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기본적인 체력과 근력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다만 전투를 한 시간이 오래 지나 감이 좀 떨어졌고, 둔한 행동은 여전하다. 쿠로쿠모로 돌아갈 것을 대비해 새로운 무기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았지만, 그라운드에서 만들기도 여의치 않아 챙겨온 네일건을 쓰기로 했다. 쿠로쿠모로 돌아가면 전기톱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을지 찾아볼 예정이다. 

    • 요괴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서 증오한다. 과거에도 호감을 가지는 일은 없었으나, 지금처럼 감정이 타들어갈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았다. 둔한 성격에 안일했던 탓도 있을테지. 마지막으로 마주한 요괴가 5년 전이건만 아직까지 그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도 않다. 

    • 여전히 손재주 좋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다. 꼼꼼하고, 할 일에 있어서는 성실하다. 계획적인 면모는 다소 사라졌다. 애초에 지금까지 계획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던가. 빈약한 정신으로 간신히 살아간다. 방울이 울린 순간에서야 눈에 빛이 들어왔다. 모든 것을 멈추고 이와유키로 향한다.

    • 지금의 정신상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 그 안의 참상을 보고 싶지 않다는 회피성. 그럼에도 멀쩡한 척 하려 노력할 것이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래도. 챙겨온 가방 안에는 네일건과 함께 여분의 옷과 전재산을 탈탈 털어 산 담배로 꽉 차있다. 현재 남은 전재산, 200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