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 Sayu  ‧  로만 사유﹞

지금까지 5년간, 《로만 운조 사유》 는⋯⋯..

땅에 버린 2년

• 열 아홉까지의 2년,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저 멀리 열대에 사는 동물을 삿포로 겨울 눈덩이 속에 파묻으면 생존할 수 없듯이, 로만 사유 또한 이 믿을 수 없는 인생 최대의 변수를 처리하기 위해 뇌내 모든 사고회로를 당겨 썼다.

• 당연히, 답 없음. 돌아갈 수 없고, 떠나겠다는 츠바키들을 붙잡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아와유키 마을 내부에서의 작은 일상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2년의 시간은 무용하게 흘렀다.   

•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건 19세 끝 무렵. 장기며 관절 기능이 평균치보다 한참 떨어진다. 현시점에 와선 음성마다 따라붙는 쇳소리, 갈비뼈 근처를 움켜쥔 손 따위가 그 반증 된다.

알차게 쓴 3년

• 그렇게 그라운드 3년차, 작은 빌라 방 하나에서 월세로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모은 후 돌연 홋카이도 하코다테시로 이주하였다. 지하도 츠바키도 시야에서 치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옳겠다는 조언에 의한 일이었다.

• 그라운드에도 없는 사람이 있다. 사정 복잡한 가출 청소년들이야 어디에나 있고, 개중에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법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로만 사유를 고용했던 업주 대부분은 막연히 그런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캐묻지 않는듯 했다. 편의점, 카페, 공장, 안 해 본 일이 없고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시점까지도 근무를 지속 중인 일터는 편의점 두 곳으로, 진열장 일체를 색깔별로 배치해 SNS에 사진이 떠돌아 다녔다.

• 둘째 주와 넷째 주 금요일 아르바이트 타임이 종료되면 곧장 가미카와 현의 아와유키 마을로 돌아온다. 대중교통으로 6시간 가까이 걸리는 장거리임에도 격주에 한 번은 츠바키 기수를 확인하러 간다. 손에는 이것저것 유행한다는 간식과 음식, 게임기 따위를 사든 채다. 친구보다 산타에 가깝다. 그러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다시 하코다테로 복귀한다.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행선임에도 구태여 고집하는 건……

 최근

• 방울이 반응하기 시작한 이래부터 모든 아르바이트와 연락을 끊고 여행을 다녔다. 지상의 지인들에게 추천 받은 코스대로 움직였고, 사진도 많이 찍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연락 타임라인]

• 17~19세, 하루에 한 번 씩 연락한다. 답장이 없으면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면 보러 간다. 징글징글하다.

• 20세, 일주일에 한 번 연락한다. 답장이 없으면 전화를 건다.

• 21세부터 현재, 격주에 한 번 연락한다. 생각날 즈음에 전화하거나 기습적으로 방문한다. 

• 연락두절의 동급생들을 이해한다. 다만, 이해는 이해고 섭섭한 건 섭섭한 거다.

운조 사유 

• 미나미모리 외곽의 운조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무기 개발에 총력을 가하던 분파였지만, 철인 로만 운조 코바타를 배출한 후 비단 무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 육신 자체를 강인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운좋게 얻어걸린 철인 코바타로 인하여 확고한 방향성을 확립한 셈이다. 의학, 공학, 과학. 뭐든 좋다. 운조는 이 땅에 잔존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자손들을 우수한 인재로 양육하고자 했다.

• 운조는 줄곧 철인으로의 의지와 상징을 유지할 존재를 찾아 헤맸으며, 운조 사유는 그들이 자신할 성공작처럼 보였으나, 실상 무수한 실패의 부작용만을 넘겨 받은 채 어른이 되었다. 

• 운조파는 현재 청년층 넷만 생존한 상태.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한다.

• 으레 철인으로 불리던 로만 운조 코바타와 로만 운조 사유는 크게 접점 없는 사촌지간이다. 다만, 사유 개인은 그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 간 ‘좋은 사람’이라 언급한 바가 있다.

운조 사유 

• 언더그라운드의 5년, 그라운드의 5년. 지상에서도 지인이 생기고 친구가 생겼으며 가깝다고 부를 만한 사람도 생겼다. 평생 나고 자란 지하보다 지상에서의 적응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츠바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하코다테로 이주한 이래 인생 최대의 황금기를 사는 중. 비명도 울음도 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 무엇 하나 하지 않아도 평온한 모양새로 흘러가는 구름. 그는 짧은 인생 내내 염원하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 교우관계는 평범한 편. 간섭과 참견을 싫어하던 친구들에게는 다행인 일이다. 츠바키들이 모인 마을로 돌아온 건 2주 전.

• 원한다면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사귄 친구의 도움으로 핸드폰을 개통했다. 자차를 운전하고 싶었으나 신분이 없으니 시도조차 불가했고, 건강상 문제로 인한 진료 또한 ‘없는 사람’인 채로는 한계가 있었다. 

• 지상에는 달콤한 디저트가 아주 많았다. 벚꽃 떡은 이전에 먹은 것과 다른 맛이었지만, 아무튼. 여전히 과할 정도의 당분을 좋아한다. 삼시세끼 잘 챙겨먹는 건 중요한 일이다.

• 지상의 생활에 적응했다. 다만, 언제든 쿠로쿠모 언더그라운드로 돌아갈 채비를 마쳐두었다. 지난 3년 간 오히려 확신하게 된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