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ene Imadou  ‧  미이네 이마도 ﹞

◇ 시간을 새기는 향기 時刻香

니시타니의 남동부. 신고쿠와 미나미모리의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닿을 법한 지점. 알 수 없는 향기에 이끌려 골목길 사이로 발을 들이면, 은은하게 타오르는 등불과 토키자카 時刻香 라는 명패 달린 고풍스러운 -나쁘게 말하자면 오래된-  향목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가문의 협력 아래 다양한 재료를 가공하여 향을 만들어왔으나, 명망 없는 사업에는 지원이 끊기기 마련. 또는 아야나시를 배출하지 못하여 명성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씩 기울던 사업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나마 사업을 연명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오랜 역사와 내공 덕분이며, 둘째,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는 문화 덕분이며, 셋째, 상류층의 취미 덕분. 현재는 그런 이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들기 위해 사업성이 있는 것들만을 좇고 있으니, 윗세대가 추구했던 본래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 기억, 감정, 추억— 소중했던 시간을 새기고 회상하는 것의 의미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지만⋯.

 토키자카에서는 향기와 관련된 여러 물품을 판매한다. 새로 개발할 여력이 없어서, 낡고 비효율적인 감이 있다. 이전에 주로 취급했던 향기는 푸른 녹음, 상쾌한 바다나 따뜻한 햇빛 같은 자연의 향기. 어르신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현되었으나 세월을 거치며 변질되어 그라운드의 것과는 분명 결이 다를 것이다. 또한, 모르는 곳의 향기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이제 그런 향기는 가게의 구석, 그늘진 곳에나 놓여있다. 손님이 많지 않기에 가게를 지키는 건 할머니와 어머니뿐이고, 아버지와 오빠들 -아직 어린 사남 제외- 은 단순 노동 및 일용직으로 돈을 벌고 있다.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피나 땀 냄새를 제거할 수 있는 향을 영업하는 것만이 그나마 토키자카를 위하는 일이었다.

◇ 소중한 사람들 香

어머니와 아버지, 정정하신 할머니, 네 명의 오빠 (장남은 25세, 차남과 삼남은 18세, 사남은 13세.), 그리고 이마도. 이 한 가족이 분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마도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 외 친족들은 결혼이나 창파 등의 이유로 분파를 떠난 상태. 이마도의 위로 오빠가 넷이나 있다는 사실을 보아, 이마도는 분파를 잇기 위해 태어난 것이 분명한 위치에 서 있다.

 거주하는 곳은 토키자카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니시타니의 아파트. 식구가 많다 보니 두 개의 호수를 계약해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집안 사람들의 사이가 서먹하여, 반으로 나뉘어 따로 거주하는 듯한 분위기였으나, 이마도가 다 같이 지내고 싶다고 고집부린 끝에 쿄우 파의 가족들은 한 집에 모일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은 오빠들. 어른들이 일을 하러 나가면 다 함께 손을 잡고 쿠로쿠모 언더그라운드를 구경하곤 했다. 주로 치안 좋은 지역을 위주로 돌아다녔으며, 요괴가 나타나면 오빠들이 이마도의 눈과 귀를 가려주었기에 이마도가 요괴나 아야나시의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이마도는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것은 단순히 분파를 이을 존재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서로 어우러지지 못하던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억을 새겨 넣어주었으니. 11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었다. 그 덕에 가족들은 외면하고 있던 추억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분파를 부흥시키고 싶다는 마음도 품게 되었지만⋯. 소중한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저 쿠로바코가, 그리고 아야나시가 누리는 명예가 눈에 밟힌다 하더라도.

◇ 미래의 새싹 

 쿄우 파는 자신들의 힘이 약해질지언정 자식을 쿠로바코에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최대한의 용기가 아이를 입학 시기에 맞춰 낳고, 형식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것뿐이었으니. 장남은 출생 시기가 늦어 나이 제한에 걸려 입학할 수 없었다. 차남과 삼남은 동시 입학을 원했으나, 힘없는 분파의 아이를 둘씩이나 보낼 수는 없다며 선택을 거절당했다. 사남은 몸이 약하다. 변명은 잘 먹혔다. 그들도 경쟁자가 줄어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영락없는 겁쟁이의 모습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나 쿄우 파의 사람들은 이제 와서 고민에 빠졌다. 이마도를 쿠로바코에 보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그때까지 분파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불분명.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나, 그 변화가 장기말이나 다름없다는 츠바키 기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커다란 문제였다. 그러나 그 고민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이마도가 아야나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졌나, 또는 그저 호기심인가. 이유는 물을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비겁한 명분, 어린아이에게 분파를 맡겨야 한다는 초라한 마음. 입학 허가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내려졌다. 힘없고 겁쟁이라 조롱받을지언정, 쿄우 파는 길게 이어져 내려왔던 분파. 사라진다는 것이 아까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마도의 가능성이 신경 쓰이기도 했을 테고. 이마도는 쿄우 파를 만들었던 이를 닮았다. 미래를 이어 나가기 위해 태어났으니 미래를 맡긴다. 그렇게 이마도는 쿄우 파의 마지막 빛이자 의지가 되었다.

◇ 쿠로바코의 코우네 芽根

 하지만⋯ 이마도는 아는 것이 없어도 너무 없다. 아야나시 하나 없던 분파에서 어떻게 훈련하고 전술을 익힐 수 있을까. 애초에 머리도, 몸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할 줄 아는 것은 눈을 빛내며 남을 바라보는 것, 무지無知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모두가 자신의 선생님이며, 동경의 대상이라면 그들의 빛 받으며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은 굳게 믿고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쿠로바코에는 꽤 많은 기대를 품고 있다. 제 또래 아이들은 길거리를 오갈 때나 마주칠 수 있었기에, 그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 마냥 기쁘다. 누구와 룸메이트가 될지도 궁금했고, 새벽 수업에 깜빡 잠들면 어쩌나 고민되기도 하고. 요괴 선생님들이 조금은 무섭고, 귀엽고, 벌써부터 가족들이 보고 싶어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눈과 귀를 막고 마음속으로 빛을 그리다 보면 다시 이겨낼 수 있다. 두려운 미래는 염두에 두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추억을 쌓는 것을 우선하고 싶으니까.

 동아리는 문학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은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이로하 노래와 백인일수. 이로하 노래는 읽을 줄 아는 문자로만 적혀있어서 좋아하며, 백인일수는 사랑과 자연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어 좋았다. 타인이 써내려 온 생각과 감정을 엿보며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 만개의 등꽃 伊万藤

 名 하늘을 가득 채운 달과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나가는 수많은 등나무 꽃⋯. 태몽으로 본 풍경을 닮은 이름. 지금 어때? 今どう？ 와 같은 발음이 나기도 하니, 가끔 제 이름으로 장난치기도 한다. 지금 기분은 어때요?

 生 5月 30日. 정오를 조금 지날 무렵. 쿄우 파를 비춰줄 하나의 빛이 떠올랐다.

 音 맑게 빛나는 목소리. 장난기와 웃음기 가득하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건 남들이 저의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일까? 1인칭은 저あたし, 상대를 부를 땐 이름. 이름을 모를 때 한정으로 당신あなた이라는 호칭 쓴다. 가끔 이름의 한자를 제멋대로 읽어 애칭을 만들며, 그 뒤에 부가적으로 붙이는 게 많다. ~씨, 쨩, 군, 오빠, 또는 언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면 알겠다고는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 보여준다.

 好 좋은 향기. 추억, 꿈, 사랑, 미래와 같이 반짝이는 단어들. 단맛이 나는 음식.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싫어하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며, 좋아했던 것이 싫어질 때도 있지만 괜찮다. 이마도는 빛을 찾아내는 것에 능하므로. 좋아하는 점 하나를 깨닫는 순간 그 빛은 무한히 넓어질 것이다.

 感 후각이 뛰어나 멀리 있는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구별 또한 섬세하게 할 줄 안다. 대신 시각과 청각은 다소 둔한 편.

 持物 집안의 향로와 몇 가지 향을 받아왔는데, 모래시계 모양을 띠고 있어 토키자카의 특색을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이 향을 태우렴. 그렇게 시간을 새기는 거야.’ 그러나 학교에서 불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