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ene Lanfei  ‧  미이네 란페이 ﹞

개인정보

• • • • 한낮의 여름. 7월 13일생의 미이네 란페이. 어지러울 란(亂)과 평평할 평(平)자를 써 혼란의 중심에도 단단히 서라는 뜻으로, 기둥을 의미한다. 이처럼 도로 파는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지반을 연관 짓는다. 가문의 모토를 새기고 요괴에게 지지 않기 위함이다.

      • 날 때부터 줄곧 히가시모토 동쪽에 터를 잡고 지내는 가족은 현 사당 주인인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조모님과 10살 터울의 누님, 본인까지 총 다섯이다. 두루 사이가 좋아 쿠로바코에 오기 이전까지 화목한 관계를 유지했다.

도로(泥)파

• • • • 히가시모토 구역에서도 가장 동쪽, 끝자락에 선 도로 사당에서는 늘 물레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예전 언더그라운드의 척박한 지형으로 생활이 불안정했던 한때 손을 댄 도예가 현 세대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이를 통해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진흙 빚는 일을 업삼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빚어 구워낸 도자기는 특히나 매끄럽고 단단했다. 사치를 멀리하고 수수함을 추구해야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나 섬세한 세공도, 화려한 장식도 없이 투박한 디자인은 나름의 정체성을 갖지만 인기가 많지 않아 아는 이들만 찾는 물건에 해당한다. 전통에 의해 남아있는 관습일 뿐, 그들이 생업으로 삼는 업무는 따로 있었다.

      • 바로 유일하게 수공을 덧대는 물건, 향로와 촛대 제작과 그로 인한 분향이었다. 보통 장례 행사에 납품을 위해 만들지만, 죽음이 빈번한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매번 의식을 치르기 어려운 형편인지라 향을 피우는 일을 대리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분향을 대신해 주는 대향(代香) 업무. 쿠로쿠모 언더그라우드에서 행하는 장례 행사와는 별개로 고인의 기일과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를 맞춰 의뢰를 받은 날, 영혼의 넋을 기리는 일을 도운다. 이에 따라 그들에게는 미약한 매연향이 배어 있다. 또한 공통적으로 작업하는 손을 중히 여겨 평소에도 필수적으로 장갑을 착용하고 다닌다.

      • 그런 도로 파는 예로부터 가문 간의 경쟁에서 권위를 탐하지 않겠다 밝힌 바 있다. 가족끼리 칼을 겨누기보다 협력 의사를 내비친 것이었는데, 거기에 호의적인 가문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업신여기어 배척하는 가문 또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해당 문파에서 자란 란페이의 경우…

공상과 현실

• • • • 그는 가문의 사상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부정했다.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이나, 언더그라운드에서 살아가는 한 아야나시의 배출은 필수불가결한 까닭이다. 평화는 도자기를 빚고 향을 피우는 일만으로는 부족함을 일찍이 깨우친 탓이다. 말하자면, 그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다. 필요한 것은 허울뿐인 화합이 아닌 지식이자 앎으로 힘을 얻으리라 믿었다. 그렇기에 곧 자연스레 책을 끼고 살게 되었다.

      •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영리한 꼬맹이가 바로 란페이였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것은 아니고, 지식의 탐구를 열망하기 시작하면서 노력한 성과가 보일 뿐이었으니 실로 진취적인 노력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는 자유니 낭만이니 하는 단어에 치를 떨었다. ‘그러다 모몬지이에게 당해 독감이나 거하게 걸리고 말지.’하고 잔소리를 놓을 따름이다. 이토록 공상에 부정적인 태도는 지금까지 그를 지도한 조모님의 영향이 컸다.

      • 디딤돌을 뜻하는 미이네 후미시. 그녀의 어머니, 즉 증조모께서는 생전 아야나시로 활동한 전적이 존재한다. 이는 손자에게 견문을 들려주기에 좋은 일이었고, 따라서 그는 아야나시가 겪을 요괴의 위험성을 알고 삶의 처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익힐 수 있었다. 두려워 도망치기보다 현실에 부딪히길 택한 이유는 그럼에도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리라. 죽음과 가까운 일생을 살지만 그런 일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주민들의 단면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박애적이어서는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 길이 올바른 일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쿠로바코

그리하여 그가 츠바키 기수에 들기를 희망한 이유는 가족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힘을 길러 도시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향한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므로. 머리가 좋고 똑 부러진 당찬 성격이었기에 신입생으로 점찍어지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슬슬 그쪽 분파에서도 선택될 시기가 오긴 했지’싶은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고로 때묻지 않은 정의를 지닌 올곧은 소신은 해당 모토를 가진 가문의 영향. 우직하고 무뚝뚝한 성향은 환경에 기인한 태도. 툭하면 참견을 놓거나 아닌 척 신경을 기울이는 다정은 타고난 성품이었다.

• • • • 타인을 부르는 호칭은 거기, 너, 그쪽 등 모호하나 지적을 받으면 순순히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단지 이름을 불러도 될 만큼 친근한 사이인지 고민하는 흔적이라고 보면 좋다. 말투는 기본적으로 반말.

      • 동아리는 당연하게도 문학부. 상식을 비롯한 도시의 역사와 같은 논픽션을 다룬 문학 서적을 주로 읽는다. 허구를 담은 소설과 그림책은 취급 안 한다. …만, 어쩌다 읽으면 재밌어서 괴로워한다. 이런 걸 읽을 시간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페이지를 넘겨 결국 완독한다나.

      • 취미는 글쓰기. 특별히 작문을 한다기보다 하루의 마무리로 일기를 작성한다.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입학하기 전부터 기입했던 것인지 제법 두꺼우며, 노트의 맨 앞 구절은 가문의 모토가 적혀져 있다. 기억유생(記憶有生).

      • 특기는 속독과 물레 돌리기. 전자는 스스로 익힌 재주이고, 후자는 가족에게 전수받은 기술이다. 이와 같이 집안일을 도우며 지냈으나 주로 책을 끼고 살아 체력이 약간… 부족하다. 나아가 운동신경이 영 꽝이다.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재능의 영역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이 못 따라준다고.

      •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머리가 너무 짧게 잘려 놀림을 받을까 민망한 탓이다. 이처럼 나름대로 눈치도 보고, 평판을 신경 쓰는지 최근에는 친구를 사귀는 법에 대해 자문을 구한다고도 한다.

시간 엄금, 순간을 금처럼

그에게 있어, 또한 도로 파에 있어 중요한 철칙이다. 쓸데없이 세월을 낭비하지 말 것. 시간과 약속을 지킬 것. 먼저 남을 해하지 말 것. 무엇보다 삶에 집착할 것. 도기에는 생명이 없으므로 아무리 깨진다 한들 고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생(生)을 이루는 것들은 다르다. 유한한 수명에, 하나뿐인 고동. 살아가는 자들은 응당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니, 하여 더욱 많은 지식을 갈망하고 성과를 보이고 싶어 하는 그는 집을 떠날 때에도 호기롭게 다짐을 건넸다. ‘꼭 아야나시가 되어 증명할게요. 약속해요.’ 가족들은 그렇게 걱정과 함께 확신을 담은 아이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