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man Sayu  ‧  로만 사유 ﹞

❝ 저기요. 진심으로 하는 얘긴 아니죠? ❞

꽉 막힌 원칙주의자. 앞뒤옆 돌아볼 줄 몰라 융통성 없이 완고하고, 한 번 옳다 믿은 일은 끝까지 밀어붙인다. ‘참견꾼’이라는 힐난을 뒤통수에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삼일 밤낮을 귀찮게 한다. 이맘때 청소년의 나쁜 특징(자의식 과잉, 벽창호, 타협 불가 등)을 모두 타고난 운조 사유는 자신의 잣대를 타인에게 덮어씌우는 악습관이 있다. 

물살에 깎여나간 바위나 밑동만 남은 나무처럼 한 번 자리잡은 양상이 변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으레 사회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타의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섞여드는 법을 학습하게 된다. 올해 고작 열 둘을 맞이한 이 꼬마는 원칙의 규범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선을 지키고 있지만, 이런 성향 탓에 의도치 않게 타인의 신경줄을 긁어놓기도 한다.

❝ 들어보세요. 앞으로 15분 안에 식사를 끝내고, 곧바로 이 앞 골목으로 나가서……. ❞

꽉 다문 입매며 삐딱한 눈썹 모양새를 보라. 그의 예민스런 성정을 짐작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무르거나 봐주는 일이 없는 운조 사유의 첫인상은 퍽 고압적이기까지 하다. 이상론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벅찬 쿠로쿠모 언더그라운드의 생존지침을 온 몸 그대로 받아들여 단어 그대로 걸어 다니는 계산기, 귀여운 구석 없는 꼬마로 성장 중.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습관이 뼛속 깊이 남아있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한다. 무엇이든 넓게 보기 위해 잘 되지 않더라도 애쓰는 덕에 퍽 섬세한 성격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타고나길 양심적인 성정을 타고나 거짓말과는 담을 쌓았다. 때로는 솔직함이 독이 되기도 하겠지만.

❝ 내가 뭘 본 거지? 지금 그 발로 실내에 들어가려는 거예요? ❞

눈 앞 상황에 까탈스럽다 해도 모 가문의 가여운 아야나시들처럼 감정을 상실하지는 않은지라. 같은 또래를 상대로는 제법 호의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타고난 원리원칙 성향이 발목을 붙잡는다. 제아무리 박학다식하고 야무진 성격이래도 고작 열 둘, 하잘 것 없는 청소년.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견디기 힘들 정도의 난장판이 벌어지면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요컨대 운조 사유의 발화점은 낮음과 보통 사이 어디 즈음에 위치하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는 물건 위치까지도 열을 맞춰 배치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어디 ‘타인’이라는 존재가 제 맘대로 되던가. 운조 사유는 마음 속으로 수를 센다. 즉, 한 번은 참는다. 큰 신장이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두 번부터는 상대를 주시 대상으로 삼는다. 세 번이 되는 순간 지난하고 고루한 설교가 시작된다.

…어른과 다름없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언니누나 노릇을 하기엔 갈 길이 멀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