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n Souta  ‧  반 소우타 ﹞

• 나의 집 <토토토토>

이곳의 가장 유명한 메뉴는 다름 아닌 ‘잡탕’이다. 말 그대로 각종 자투리 재료를 섞어 만든 꿀꿀이 죽이다. (정식 명칭은 ‘토토 스튜’지만, 작금에서는 쇼우 파 내외와 외지인의 전유물이 되었다.) 솔직한 말로 그리 보기 좋은 음식은 아니다. 조리법조차 간단하다. 냄비 바닥에 곡물 바를 잘게 부수어 깔고, 데워진 스튜를 한 국자 떠올리고, 다시 곡물을 다져 넣고, 다시금 스튜를 얹는 단순한 과정. 하지만 사골처럼 오래 졸여낸 국물은 깊고 진하다. 캐러멜라이징된 양파의 은은한 단맛, 샐러리의 쌉싸름한 향, 온갖 허브와 이파리가 어우러진 향긋함, 그리고 부드럽게 풀어진 곡알들의 고소함. 누구나 만들 수 있었고, 흔한 재료들이지만, 그 조합이 선사하는 따뜻함과 든든함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다.

• • • • • • 그 밖에도 뜨겁게 달궈진 돌 접시를 밤나무 이파리로 덮고, 그 위에 군밤 가루 반죽을 듬뿍 붓는 과정을 층층이 반복하여 만든 네치(necci), 바싹 튀긴 애호박꽃, 호밀 가루를 곱게 쑤어 만든 폴렌타 죽, 저온에서 장시간 익힌 양파에 아몬드와 채수를 넣고 끓여낸 수프 등을 판매한다. 과연 <토토토토>의 요리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가볍지도 않다. 묵묵한 정성으로, 단순한 한 끼를 넘어 마음마저 채워주는 온기가 있었기에.

• 나의 가족 쇼우(翔)

여느 쿠로쿠모 그라운드의 건물처럼 <토토토토>도 회색 반죽을 치덕치덕 발라 마감했다. 겉보기엔 차가운 광택을 띠지만, 내부는 확연히 다르다. 공간을 가득 채운 천과 러그가 마치 따뜻한 품처럼 감싸고, 그 위로 스며드는 전등 빛은 부드럽고 포근하게 퍼진다. 모든 것이 섬세하고 아늑하게 조화를 이룬다. 소우타의 가족도 그와 닮았다. 언뜻 보면 일손을 거들지 못할망정 사고만 치고 다니는 소우타를 냉정하게 방치해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명확히 다르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풀어두는 것이다.

• • • • • • 물론 일이 바쁠 때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법했다. 하지만 소우타의 손만큼은 절대 빌릴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그가 손을 대기만 하면 국물은 심하게 졸아들고, 불길은 타오르며, 도구는 망가지고, 기계는 고장이 났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란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 하물며 소우타가 마냥 태평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언제 요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세상에서 위기를 감지하는 데에는 선수였다. 그건 단순히 민감한 정도가 아니었다. 되려 지나치게 예민하고 날카로운 나머지, 소년을 ‘미래의 새싹’으로 만들어 버렸다.

• 쿠로바코의  ⌜츠바키⌟      (1) 쿠로쿠모 그라운드의 비이상적 일상 속에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히가시모토를 혼란에 빠뜨린 ‘슈텐도우지’가 거리를 덮쳤을 때, 소우타는 <토토토토>와 가족들을 지켜냈다. 다만 주어진 지면을 할애할 정도의 무훈담을 남긴 것은 아니므로, 짧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 • • • • • 소년의 ‘감’은 언제나 그를 이끌었다. 쓰러지는 천막을 간발의 차로 비껴가고, 기름 방울이 튀어 오르기 직전에 손을 빼 데지 않았다. 장난치다 허겁지겁 도망칠 때조차 교묘히 자리잡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를 테면 감각, 직감, 혹은 육감. 그날도 어김없이 소년을 이끈 것이었다.

          • 결과적으로, 쇼우 파는 살아남았다. 소우타는 <토토토토>의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자던 어른들을 온몸으로 설득하여 거리를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울고불며 떼를 썼다. 길 바닥에 드러누워 절규하기까지 했다. 나가자고오오!! 여기 있으면 안⋯, 안 될 것 같다고오오오──⋯!!! 왜 내 말을 안 들어주는데에에에에⋯!!!!!)

          • 그러나 옆집 레이의 신발은 짙게 물든 채 진창을 나뒹굴었고, 건너편 코코로 씨가 자랑하던 멋들어진 헬멧은 함부로 짓뭉개져 있었다. 거리에는 부서지고, 흩어지고, 뭉그러지고, 진득히 뒤섞여 무너진 것들뿐이었다. 

• 쿠로바코의  ⌜츠바키⌟     (2) 영원불멸할 둥지는 없다.

결국 지하 도시에서 사는 이들은 괴이한 것들에 의해 찢기고, 헤집어진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아야나시가 될 누나도, 굳건히 아야나시로 활동하고 있는 사촌 누나의 배우자도, 비교적 안전한 곳에 머무는 다른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것은 눈을 부릅 뜬 채 주변을 둘러본다. 누나는 방학 내내 쉴 새 없이 장난을 걸어오고, <토토토토>의 불빛은 여전히 거리를 따스하게 비춘다. 이곳은 아직 그의 ‘둥지’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마주하는 보금자리처럼 언제든 돌아와 몸을 누일 수 있다. 그러나 둥지는 반드시 허물어진다. 바람이 불고, 가지가 썩고, 금이 간 틈으로 서서히 망가진다.

• • • • • • 소년은 결심한다. 둥지가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날아야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익숙한 거리에서 주고받는 안부 인사, 사소한 웃음들 — 그 모든 것이 이어지려면 웅크려 있을 수만은 없다.

          • 하물며 새가 땅에 묻혀 살 수는 없는 법. 어른들은 비상(飛翔)이 필연적으로 추락을 동반함을 알았으나, 그것이 품 안에 꼭꼭 숨겨둔다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소년이 지원하고자 하는  ⌜츠바키⌟ 가 대 라이진 전의 장기말로 길러질 운명을 알려주되, 선택은 그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 입학은 어렵지 않았다. 기부금은 준비되어 있었고, 슈텐도우지 무리가 직선으로 지나친 거리에서 살아남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소문은 <토토토토>의 근방이라면 누구 하나 모르는 일 없이 퍼져 있었으니까.

• ~ 특명! 쿠로바코의 입학생의 넓고 얕은 대화를 위한 개인 정보 털이  ~

  • • • 고향, 히가시모토. 쿠로쿠모 익스프레스를 타고 전 지역을 일주한 적은 있지만, 거주지를 바꾼 적은 없다.

      • 정말, 정말 어울리진 않지만, 연극부다. 가만히 서 있는 돌이나 나무? 자신 있다! 엑스트라 16? 대사가 없을 테니 환영한다! 백스테이지에서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꼬옥! 알려주길 바란다. (다만 대본이나 조명 담당은 사양한다. 전자는 ‘크아아앙. 소우타가 미우를 물었다. 미우는 기절했고, 소우타가 이겼다!’ 같은 내용이 될 것이고, 후자는 분명 스무 개든 서른 개든 깨트리고 말테니까.)

      • 친누나, 반 쇼우 미우(帆 翔 天羽)가  ⌜히마와리⌟ 기수로 재학 중이다. 누가 보아도 똑 닮은 남매. 그는 계약의 대가로 ‘두려움’을 바쳤다. 덕분인지 신체 탄력성의 한계를 무시한 채 날라다닌다. 말 그대로! 커리큘럼상 만날 일은 적겠지만, 미우나 소우타나 서로에게 기웃대지 않을 리 없다. 사이는 아주 아주 아~ 주 좋음! 

      • 원체 걱정이 없는 편(애초에 깊은 생각이 없다.)인즉, 아주 평온하고 안정되어 있다. 그저 입학을 기다릴 뿐.

      • 일인칭은 오레(俺), 상대를 부르는 방식은 그때그때 다르다. 별명을 부르는 친구도, 이름만 부르는 친구도 있다.

      • 생일은 6월 5일. 호불호가 뚜렷한 편은 아니다. 재미있어 보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 반사신경은 예리하고, 움직임은 매끄럽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애물도 가볍게 피한다. 소문에 따르면 ‘굴러오는 요나키이시를 피하는 놀이’를 즐긴다고 하던데⋯ 기껏해야 13살짜리 아이가 요괴를 상대로 무엇을 하겠는가? 그저 언제나 사고만 쳤다 하면 잽싸게 사라지는 소년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하이구야. 저 정도면 요나키이시도 피하겠어.”라며 농담 겸 관용어처럼 말하는 것이다.

      • 의외로 끈기가 있다. 예컨대 <토토토토>에서 사용하는 밤 가루는 한 달을 꼬박 새워 밤나무 장작으로 구워낸 밤을 빻아 만드는 방식이니까. 따라서 가루를 만들고(이것만 해도 대량 작업이다.), 이미 계량된 반죽을 치대고, 틀을 찍어대는 등 어린 몸으로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이란 작업은 모조리 도맡았다.